청춘의 독서 / 유시민

josep.k 2019. 2. 14. 02:29

- 길을 잃었다. 많은 친구들이 함께 여정을 떠났지만 갈림길을 지날 때마다 차례차례 다른 길을 선택해 멀어져 갔다. 아픈 다리 서로 달래며 지금까지 동행했던 사람들도,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곳에선가부터 함께 걸어왔던 이들도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날이 저물어 사방 어두운데, 누구도 자신 있게 방향을 잡아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망연자실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지도 못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서 무엇이 어긋났던 것인지 살펴보는 일뿐인 것 같다.(p.06)


-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고등학생 시절, 공부가 잘되지 않으면 문고판 책이 많았던 아버지의 서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 뒤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으면 기분 전환이 될 때까지 읽다가 덮어두곤 했다.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서, 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여기서 "그런 일"은 살인이다. "이토록 하찮은 일"이란 하숙집 여주인과 마주치는 것이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고 돈을 훔치기로 결심한 주인공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는 현장을 미리 답사하기 위해 하숙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이, 집세와 식대가 밀려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눅이 든 나머지 혹시 계단에서 하숙집 여주인과 마주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주인공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비웃었던 것이다.(p.18)


-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p.28)